2022. 5. 28. 21:55ㆍ구역/여의도생태
나라에서 세금으로 거둬들인 쌀이 전국에서 모여드는 서강나루. 물 때가 되어 거상들의 배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면 돌쇠를 비롯한 이곳 서강나루의 일꾼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부두에 모여든다.
돌쇠는 배에서 내린 쌀을 근처 창고로 옮기는 하역 일꾼이다. 일 잘하기로 소보다 낫다는 서강나루 일꾼들, 그중에도 돌쇠는 서강 최고의 장사다. 안 그래도 품삯을 가장 많이 받아 가는 돌쇠가 요 며칠 쌀짐을 지고 나르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그뿐인가. 평소 무뚝뚝하기가 바윗돌 같던 놈이 혼자 이유 없이 히죽대는 것이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그렇게 무리하다 몸 상한다며 쉬엄쉬엄하라는 걱정 반, 시기 반의 충고도 돌쇠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바로 사흘 전, 돌쇠 내외가 그토록 기다리던 아이가 아내의 뱃속에 들어섰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돌쇠가 아내를 만난 것이 벌써 8년 전. 서강나루에서 땅에 떨어진 나락을 쓸어 모아 먹고살던 딱한 여인이 있기에 남몰래 가마니를 뜯어 도와주다 정이 든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밥은 굶기지 않겠다 약속하고 데려와 살림을 차렸다. 성실하고 금실 좋은 이 부부에게 딱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아무리 애를 써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이었다. 돌쇠는 아내가 어려서부터 굶기를 밥 먹듯 해 몸이 허약해졌기 때문인가 싶어 자신은 못 먹어도 아내만은 생선국에 쌀밥을 거르지 않게 했다. 그 덕에 시집올 때만 해도 마른 나무 꼬챙이 같던 몸에 이젠 제법 살도 오르고 앓는 횟수도 줄었다. 그렇게 정성을 다해 기다린 끝에 점지받은 아이인 만큼 역신(疫神)이 시샘이라도 할 새라 배가 불러오기 전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다. 서강나루 세곡배 위를 뛰어다니며 춤이라도 추고 싶은 돌쇠는 입이 근질근질한 것을 참느라 사흘째 죽을 지경이다.
돌쇠는 마음이 급하다. 나이 들고 기력이 쇠해 더는 쌀짐을 나를 수 없게 되기 전에 빨리 돈을 모아야 한다. 배 한 척만 마련하면 이곳을 드나드는 선주들처럼 큰돈을 벌 수 있으리라. 아이를 목에 태우고 너른 한강과 바다를 누비는 꿈을 꾸는 돌쇠, 오늘도 울퉁불퉁 근육이 솟은 그의 양어깨에는 하얀 소금꽃이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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