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16. 12:13ㆍ구역/사진과글들
길을 가는 사람을 잡고 좋아하는 색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세계적으로 청색을 꼽는다.
그러나 가장 좋은 이미지의 색을 묻는다면 마땅히 녹색을 최우선으로 한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녹색을 가장 높은 선호색으로 꼽는다.
녹색이 자연에서 온 색이며 자연을 상징하고 순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녹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으례 순수하고 자연 지향적인 성향을 보인다.
동·서양이 갖는 다른 의미의 녹색
우리의 전통적인 의식 속에서도 녹색은 좋은 의미를 많이 담고 있다.
우선 자연경관에서 온 색인 유록색, 춘유록색, 유청색, 녹색, 초록색, 취람색 등이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우리 조상들이 긴긴 겨울을 보내며 봄을 학수고대 했던 이미지가 담겨 있는 색이 많다.
예를 들어 춘유록색은 겨울에 움츠렸던 버들가지에 물이 오르며 처음으로 돋아나는 어린잎 색이다.
유록색은 며칠 뒤인 봄기운이 좀더 들어간 버들잎 색이고 유청색은 완전히 핀 버들잎 색이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의 녹색에 대한 사랑과 서술은 유별나다.
또한 녹색은 아리따운 규수를 말하기도 한다.
깊은 규방에서 곱게 자란 양가댁 규수를 표현 할 때도 녹색을 사용한다.
서울에 있는 모 여대의 학교 마크가 바로 이 녹색이다.
원래 전통적으로 동쪽을 사랑했고 지향했던 선조들이 동쪽에서 돋아나는 기운으로 생각했던
청색이 눈으로 보이는 봄의 기운과 연결해서 청과 녹을 함께 서술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청색과 녹색이 그 의미상으로 같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한국 사람이 청색과 녹색을 같이 본다는 것은 색을 구분 못해서가 아니라
봄의 기운으로 상징성을 같이 본 것이다.
반면 서구를 포함한 미주에서의 녹색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우선 자연미와 중립성을 들 수 있다.
자연미는 대자연의 상징 색으로 자연을 곁에 두고 싶을 때 사용하기도 하였다.
중립성은 온도감과 관계된 것으로 빨간색이 뜨거운 것을 상징하고 파란색이 차가운 것을 상징하는 색이므로
중간의 녹색은 온도감이 온화하고 별로 느낌이 없는 온도감을 갖는 색이 된다.
이렇게 시작된 녹색의 중립성은 사람의 감정이나 정신상태의 중립을 의미하는 것과 동시에
서툰 일 또는 바보스러움, 촌스럽고 답답한 의미를 내포한다.
독일의 속담에 “녹색을 몸에 칠하면 염소가 먹어치운다”는 말은 바보짓을 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영국에서는 “내 눈 속이 녹색으로 보이냐”고 물으면 내가 바보로 보이냐는 간접적인 표현이 된다.
녹색은 수줍은 아가씨?
한국에서 녹색이 규수를 상징한다고 했는데 서양의 중세 문학에서도 녹색은 순수한 시골 아가씨를
상징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런 이유로 서양에는 녹색과 관계된 아가씨의 이름이 많다.
예를 들어 플로라(Flora)는 로마인이 섬겼던 꽃과 식물의 여신이며, 실비아(Silvia)는 라틴어로 숲이라는 뜻이다.
이밖에도 올리비아, 린다 등 많은 여성의 이름이 녹색에서 나왔고 그들은 모두 순수, 자연, 생명을 상징한다.
이밖에 녹색이 남성을 상징하는 경우에는 반대로 대자연의 권위와 군림하는 자의 상징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종교에서도 녹색은 빨강, 파랑과 함께 성령을 나타내기도 한다.
녹색이 이처럼 생명과 중립을 나타내는 반면 독(毒)을 나타내기도 한다.
자연 염료가 아닌 인공염료로 녹색을 만들려면 많은 양의 독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녹색을 만들기 위해서 옛날 화가들은 구리에 초를 섞어 녹색을 만들었다.
그리고 구리조각에 비소를 넣어 녹색을 만들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나폴레옹이 그의 운명을 결정짓게 된다.
유난히 녹색을 좋아했던 그는 많은 양의 인공 녹색염료를 만들게 했고 자신의 주변을 녹색으로 치장했다.
결국 프랑스에서 그의 사인을 분석한 결과 독살된 것이 아니고 주변의 녹색에 의해 비소로 인한 만성 중독임이 밝혀졌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보는 SF 영화의 외계괴물의 피나 점액들은 거의 대부분 녹색으로 되어 있다.
피와 반대되는 색으로 혐오감을 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런 과학적인 비소의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는 녹색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눈이 어지럽지 않다고 한다.
여기에는 분명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
우선 녹색은 시야각을 가장 좁게 차지한다.
즉, 흰색은 눈의 시야 중심에서 벗어나 있어도 감지된다.
그러나 녹색은 시야의 중심에 있지 않으면 감지되지 않는다.
반대로 설명하면 시야 주변의 녹색은 눈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숲에 들어가면 눈이 편안한 것이다.
그러나 주의 할 것이 있다.
여기서 말한 녹색은 낮은 채도의 녹색이지 순수한 원색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녹색이 눈에 좋고 자연 친화적 이라고 하여 높은 채도의 원색 녹색을 자주 사용하는데
그것은 매우 위험하다.
예를 들어 문화재 주변의 녹색 철책은 문화재를 더욱 보기 어렵게 한다.
차라리 회색으로 하는 것이 더 좋다.
그렇다면 좋은 친화적 녹색은 어떤 색일까?
정식 산업규격용어로는 칙칙한 녹색이다.
회색기미가 많은 녹색으로 어두운색을 사용해야 한다.
원색의 녹색은 피로감과 시야를 어지럽힐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예로, 병원의 수술실을 들수 있다.
외과 수술시 의사의 가운이 녹색이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시술의가 눈에 녹색의 잔상이 떠오르는 것을 해소시키기 위한 것이다.
또한 수술시 가운에 얼룩이 지는 피의 색과 보색이어서 가운에 묻어도 진한 회색으로 보이거나 검은 얼룩으로 보인다.
이처럼 외과 수술복에 있어서도 녹색은 중요한 색이 된다.
오락과 관련해서도 당구대나 트럼프놀이판 또는 카지노의 바닥이 모두 녹색이다.
이유는 역시 녹색이 시야를 어지럽히거나 피곤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태보다 조금은 어둡고 칙칙해져야 한다.
세상을 밝고 밝게…
반면 녹색을 사용하여 색채계획을 할 경우 위험한 부분도 있다.
주거 관련시설과 실내 색채계획에서 녹색을 사용할 경우 아주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이유는 녹색이 지나치게 운동량이 낮아 거주자에게 운동력 저하, 생리적 힘의 감퇴,
성장 저하 등 운동량을 급격히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과거 색채학자로서의 괴테는 녹색을 찬미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의 녹색은 요즈음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강한 원색의 녹색이 아니었다.
당시의 직물과 도료로 된 칙칙한 부드러운 녹색이었다.
현재 우리는 컴퓨터와 인쇄기술의 발달로 지나친 원색의 세상에서 강한 자극을 받고 살아가고 있다.
보다 한 걸음 물러나서 부드럽고 따뜻하게 녹색을 맞이해 보자.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녹색의 장점은 바로 시인성이다.
시인성이란 색이 어느 정도 우리에게 잘 보이느냐 하는 것이다.
환경적인 조건 없이 녹색을 본다면 단연 가장 시인성이 뛰어난 색이다.
특히 주간에는 연두색이 가장 높고 야간에는 녹색이 가장 시인성이 높다.
빨간색은 시인성이 낮아도 장파장으로 구성되어 공해가 심한 도시에서도 멀리 보이는 색이다.
반면 녹색은 자체 시감도가 높아 하나의 색으로만 보았을 때 가장 눈에 띄는 밝기를 갖는다.
이런 이유로 자동차의 신호등이 녹색이고 병원의 십자도 녹색이고 역시 비상구도 녹색이다.
특히 비상구는 어두운 실내에 있으므로 시야에 가장 밝게 들어오고 잘 보이는 색이 된다.
그리고 현재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밝기의 검사기준인 Lux를 측정할 때 녹색의 양으로 측정하고 있다.
끝으로 색을 보다 효과적이고 아름답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색채의 의미를 보다 과학적으로 이해할 것을 권한다.
글 : 문은배 색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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